생과 죽음을 넘어서는 깊고 오랜 시간의 감각을 노래한 시인, 故 허수경(1964~2018)

지난 10월 3일 오후 7시 50분(한국 시각) 시인 허수경이 독일에서 암 투병 중 별세했다(향년 54세). 故 허수경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역에서』등의 시집이 있고, 산문집으로 『길모퉁이의 중국식당』(개정판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등이 있다. 2001년 동서문학상, 2016년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제15회 이육사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힘든 투병을 해오던 시인의 고단한 몸은 뮌스터의 흙에 묻혀, 30년 가까이 함께했던 그곳 가족 이웃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30년 남짓, 여섯 권의 시집을 통해 허수경은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빛내왔다. 1992년에 독일로 건너가 햇수로 27년째 이국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썼던 시인은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며,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했다. 우리는 허수경이 시로써 이야기한 오래된 일과, 그것이 무엇으로 남아 현재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혼자 가는 먼 집』, 1992)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던 각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글’을 통하여 시인의 궤적을, 이국에서 모국어로 시를 써온 마음을 가만히 짐작해본다.

 

 

 

 

 

 

 

 

 

 

 

 

 

 

 

 

 

 

 

 

 

 

92년 출간된 『혼자 가는 먼 집』에서 허수경은 누추하고 쓸쓸한 마음에 대해 노래한다. 이 시집의 시들은 사라져가고 버림받고 외롭고 죽어 있는 모든 마음들을 따뜻한 모성으로 애무하고 품는다. 이 세상의 긁히고 갈라지고 부러진 것들을 탁월한 여성성으로 잉태한다. 시인은 말한다.

“나는 마음이 썩기를 원한다. 오로지 몸만 남아 채취되지 않기를, 기록되지 않기를, 문서의 바깥이기를.
이것이 마음의 역사이다. 그 역사의 운명 속에 내 마음의 운명을 끼워넣으려 하는 나는 언제나 몸이 아플 것이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2005)에서 시인은 고대의 유적들을 발굴하듯이 언어와 육체를 발굴한다. 시인의 발굴을 통해 드러난 잊히거나 숨겨진 과거의 육체와 전쟁 유물들은, 거짓된 평화로 매끈해진 현실의 거울 면에 적나라하게 비친다. 이렇듯 시인은 먼 이국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의 거울에 고향을 비추거나, 머나먼 고향의 거울에 자신의 육체를 비춘다.

“어떤 이는 말[言]을 부리고 어떤 이는 말과 놀고 어떤 이는 말을 지어 아프고 어떤 이는 말과 더불어 평화스럽다. 말은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고 말은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가곤 했다. 더운 말 차가운 말, 꿈과 불과 어둠과 전쟁의 말.
[……]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어쩌면 내 삶에서조차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하여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시인의 말)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이 되어 우리 모두의 채우지 못한 마음의 빈 곳을 가리킨다. 이국에서 모국의 기척을 살피며 시인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2016)에 수록된 시들로써 계속 ‘무엇이었을까’ 묻자고 쉬지 않고 서로에게 ‘기별의 기척’을 건네길 바란다.

“어느 기차역, 노숙자는 낡은 시집을 읽으며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면 무심코 눈결을 주었다.

나는 염치 불고하고 시집 제목을 훔쳐보았다.

《불가능에게로》

시인의 이름은 너무 희미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기차는 철로에 앉은 비둘기들을 몰아내며 들어왔고 비둘기들은 도시의 눅눅한 하늘로 흩어졌으며 나는 기차를 탔다. 차창 너머로 보랏빛 시집 제목이 보였다. 내 목적지인 것 같았다.”

 

“나는 ‘진주 저물녘’의 시간으로부터 독일의 오래된 도시와 폐허의 유적지로 이어지는 시인 허수경의 장소들과 시간들을 다 알지 못한다. [……]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노래하는 허수경의 한국어가, 저 먼 곳에서 계혹 태어나고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놀랍고 뜨거운 일이다.”_문학평론가 이광호

 

*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