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성의 미학』 서평 – “현대 퍼포먼스 미학 이론의 체계를 다룬 고전”

안치운(호서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연극평론가)

 

1.

이 책의 제목은 『수행성의 미학』(에리카 피셔-리히테, 김정숙 옮김)이고, 원본에는 없는 것 같은, ‘현대예술의 혁명적 전환과 새로운 퍼포먼스 미학’을 부제로 붙였다. 2004년에 출간된 독일어판을 번역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은 2008년에 영어로 번역된 책을 먼저 읽고 참고했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현대 공연예술의 핵심인 퍼포먼스 이론을 한꺼번에 새길 수 있는 데 있다. 이 책은 연극을 넘어서 볼거리인 공연에 관한, 이름을 붙이자면 현대 퍼포먼스 미학 이론의 체계를 다룬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1) 책 앞에 인용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자. “[…] 머물러 갇히면 그 순간 응고되네 / […] / 아 벌써, 사라졌던 망치가 걸어온다! /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자 / […]” 이 책은 현대 공연예술, 그것을 널리, 넓게 보아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그것이 왜 불꽃처럼 타오르고, 솟아올라야 하는지를 웅변한다. 나아가 그것이 왜 망치가 되어야 하고, 샘물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현대 공연예술이 더욱 퍼포먼스 계열로 진화하고 있다는 진술은 반은 옳고, 나머지 반은 그르다. “제의 , 축제, 스펙터클, 스포츠 경기, 정치 집회 등 […] 현대축제까지 포함하는”(432, 436, *이하 괄호 속 숫자는 책의 쪽수를 뜻한다) 퍼포먼스 분야를 학제적으로 공부하는 이들이 모인 PSI(Performance Studies International)라는 학회가 1994년부터 매년 세계 각국의 도시를 돌면서 국제적 단위의 학회를 여는 것을 보면, 이 분야의 연구는 오래되지 않은, 공연예술을 새롭게 다루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참고로 이 학회는 2017년 함부르크 대회에 이어서 2018년 세계 대회를 대구시, 대구문화재단, 한국드라마학회 공동 주최로 우리나라 대구에서 개최한다). 나머지 반은 그르다고 한 바는 연극과 공연예술 전반에 관한 이론을 기준으로 보건대 수행성의 미학은 더 고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독일 저자와 한국 번역자는 사제지간이다. 번역자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저자의 지도로 박사 논문을 썼다. 제자가 귀국해서 스승의 책을 번역한 것인데, 여기에는 남다른 존경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 책의 부제로 달아놓은 “혁명적 전환” 같은 문구가 그렇다. 스승과 제자의 오롯한 관계, 새로운 연구분야의 잉태와 탄생에 관한 존경이 깔렸다. 졸업한 이 대학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고 번역할 수 있었다고 제자이며 역자가 쓰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2.

이 책의 중심어를 보자. 현대 퍼포먼스 이론을 관통하는 용어들은 “연기자와 관객의 새로운 관계 규정”(35)과 “퍼포먼스 이론theatre and performance studies”(13), “퍼포먼스 문화performance cultures”(165), “피드백 고리의 자동 형성성autopoietic feedback loop”(362), “세계의 재마법화reenchantment of the world”(401), “수행성의 미학transformative aesthetics”(41), “변환Transformation”(18) 등이다. 이 가운데에서 무게가 많이 실리는 핵심어는 ‘수행성의 미학’이다. 이것을 쉽게 풀어쓰면, 관객 맘대로 보고, 경험하고, 드러내기, 즉 관객과 공연의 “새로운 관계를 실제로 규정할 때 일어”나는(38) 현상을 주목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관객이 공연의 수취인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 행위자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자주 쓰이는 (관객의) 수행성transformative과 (관객이라는 존재의) 변환 혹은 전이transformation라는 단어의 어원과 의미는 같다. 저자는 이 두 단어를 중복해서, 공연에 참여하는 예술가와 관객의 변환 체험, 즉 “자신을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발휘”(40)하는 바를 말할 때, ‘수행적 전환’(40)이라는 용어도 만들어 함께 사용한다.

수행성의 미학의 중심은 관객에 관한 미학으로, 공연에서 관객이 새롭게 배태, 탄생해서 죽음에 이르는2) 이론이다. 이미 1970년대 연극기호학 이론은 작가의 죽음, 관객의 탄생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현대 퍼포먼스 이론가들은 이 말을 작가에 대한 배려는커녕 조심성 없이, 과감하게 사용한다. “관객의 감정을 흔들고, 경이에 차게 만드는”(22) 시학이 아니라, 관객 맘대로라고. 그러니까 퍼포먼스에 관한 수행성의 미학은 “관객이 강한 충격과 도발에 의해 행위자로 변하는 예술적 스펙터클”(24)을 옹호한다. 아주 오래전, 셰익스피어는 「네 뜻대로As you like it」라는 제목의 희곡을 썼다. 여기서 수행성이란 ‘네 뜻’처럼, 예술작품의 주체와 객체, 기표와 기의가 충돌하게 하는 “힘과 가능성”(46), 관객이 스스로 변환의 경험을 갖도록 하는 “조화와 충돌”(48), 내러티브와 퍼포먼스의 “통합과 융합”(481)을 의미한다.

 

3.

저자는 지난 세기, 작품을 창조한 작가의 입장이란 대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고, 그들을 관음증으로 유도”(25)하는 표현성에 관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에 반하는 수행성의 미학은 작가가 한 것과 작품을 통해서 관객인 내가 느낀 것을 구분하는 공연성에 비중을 둔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행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예술가의 경험과 관객에게 불러일으킨 경험”(25)을 중요하게 여기는 수행성의 미학은 이 구분으로부터 관객의 경험과 해석을 정당화하는 “해석학적 미학이고, 기호학적 미학”(27)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 스스로가 공연의 모든 수행성을 책임지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수행성의 미학은 관객에게 ‘너 스스로 느껴라’라고 말한다. 그 끝은 관객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수행하”(27)는 데 있다. 수행성이라는 용어는 표현성이라는 단어와 대립 관계에 놓여 있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고전적 텍스트가 지녔던 위엄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수행성의 미학이다. 그것은 텍스트가 지녔다고 여겼던 신뢰성, 진실성이 주는 부담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관객은 더는 텍스트에 빚진 게 없다고 말한다. 연극을 비롯한 공연은 더는 텍스트를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퍼포먼스에서 텍스트는 수행성 창출을 위한 하나의 물질성, 기표, 기의(305)일 뿐이다. 관객은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일 뿐 아니라 행동하는 행위자”(30)라고 말한다. 저자가 독일 사람이고 베를린에 있는 대학에서 가르쳤던 터라, 이런 의미에서 브레히트에 대한 긍정은 큰데,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듯하다. 저자는 수행성의 미학을 언급하면서 브레히트가 말한 것처럼 연극은 수많은 물질의 합체이고, 텍스트는 그것 가운데 하나이며, “현존과 재현”이라는 이념을 구분해서, 관객은 텍스트를 얼마든지 수정, 보완, 교환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 이른다(325)라고 서술하는 것을 보면.

 

4.

읽다 보면, 이 책의 서술이 저자의 육성처럼 들릴 때가 있다. 글 곳곳에 자신의 이론을 큰 이론으로 내걸고, 논증하기(167) 위하여 말할 때도 있지만, 발화하는 목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목소리로써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을 접촉”(288)하는 것처럼 책이 읽힌다. 가령 이런 부분에서. “여기에서 필자가 논의하려는 것은 의미 생성 과정이 과연 해석학적 과정인가 하는 문제다”(344). 저자는 단호하게 무대 위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인터뷰에서 저자는 무대 위,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도 말한다. 수행성의 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언급은 언제나 목소리를 내는, 의미를 부여하는 당신, 즉 관객이다. 관객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터이므로, 관객 누군가는 의미를 구성하는 미학적 경험, 그 해석학적 과정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347).

수행성의 미학을 다룬 이 책의 대부분은 관객의 수용미학적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그 미학적 경험은 지각 행위를 통해서 촉발되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용어가 피드백 고리다(348). 그것은 달리 말하면 위기의 상황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공연에 관한 이해와 성찰을 넘어서는, 강렬한 감정 같은 것으로 채워진 위기의 경험이다(349). 첫 장에서 수행성의 미학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2장에서 이 용어의 개념을 설명한 후부터 3~7장은 이러한 경험의 생출과 의미해석 그리고 미학적 경험을 삶과 연관지어 서술하고 있다.

 

5.

저자의 이론은 많은 부분, 고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미학, 표현성, 카타르시스 경험에 대한 이탈과 부정이고, 관객의 역치성과 변환의 경험(423)에 대한 긍정이다. 수행성의 미학의 이전을 내러티브에 의한 텍스트 중심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는 행위에 의한 퍼포먼스다. 저자가 다루는 수행적 문화에 대한 이론 전개는 매우 독일적이다. 20세기 초 수행적 전환, 몸 문화의 선언 중심에 놓인 니체의 이론들을 크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428). 잠시 폭스, 아르토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고, 브레히트에 이어서, 1960년대 크로토프스키, 셰크너의 제의적 연극, 퍼포먼스 공연(431), 그리고 이 책 맨 먼저 언급한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맨 끝은 “수행성의 미학은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 및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을,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뿐 아니라 저것도’에 의해 결정되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을 장려한다”(456)에 이르게 된다. 이 결론적 서술은 퍼포먼스와 삶의 관계가 서로 종생적이라는 저자의 의지를 웅변한다.

 

이 책을 다 읽고, 역자가 쓴 글귀처럼, 읽을 만한 문장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문장 하나는 “공연에서 현재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삶이다”인데(453), 두툼한 이 책에서 수행성의 미학의 결론과도 같은 이 경구는 여러 가지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슬쩍 그 예를 하나 덧붙이면서 서평을 끝맺는다. “예술은 공연보다 더 깊이 삶에 관여할 수 없고, 공연보다 더 가까이 삶에 접근할 수 없다”(454). 여기서 예술은 수행성의 미학 이전이고, 공연은 수행성의 미학의 현재와 미래를 뜻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술과 공연 혹은 수행성의 미학 이전과 이후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닐 터, 이 책은 부제처럼 절대적 퍼포먼스 미학이 아니라, 삶에 관여하는, 삶에 관한, 퍼포먼스 같은 삶의 새로운 미학이라고 읽어도 될 것이다. (끝)

 


1) 이처럼, 한국연극에서 에리카 피셔-리히테에 관한 관심과 연구는 최근에 부쩍 늘었다. 김정섭의 「연극 공연의 창발성Emergenz: 관객의 지각방식과 배우와 관객 간의 협동현상을 중심으로」(『드라마 연구』 42권, 한국드라마학회, 2016). 심재민의 「수행적 미학에 근거한 공연에서의 지각과 상호매체성」(『한국연극학』 60권, 한국연극학회, 2016), 김정숙의 「에리카 피셔-리히테의 수행성의 미학과 기본 개념들」(『연극평론』, 한국연극평론가협회, 2012), 그 외에 석사학위 논문으로, 백인경의 「에리카 피셔-리히테의 퍼포먼스 이론 연구: ‘수행적인 것의 미학’을 중심으로」(서울대학교 공연예술협동과정, 2014) 등을 참고하면 좋겠다.

2) 여기서 관객의 죽음이란, 앞에서 인용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구절을 빌리면, “시작은 끝이며, 끝은 시작인 창조의 길로 이끄는 표식”(11)이다.

카테고리 교양인문서,인문 | 출간일 2017년 8월 11일
사양 신국판 152x225mm · 502쪽 | 가격 26,000원 | ISBN 9788932029870

에리카 피셔-리히테 연구자, 일반저자

베를린 자유대학과 함부르크 대학에서 연극학, 슬라브문학, 독문학, 철학, 심리학 및 교육학을 전공했다. 1973년부터 프랑크푸르트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쳤고, 1986년에는 바이로이트 대학으로 옮겨 일반문예학을 가르쳤다. 1990년 새로 창립된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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