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4만 8천 매가 거쳐온 시간 – 『이청준 전집』 완간 후기

오랫동안 애정 어린 응원과 날카로운 질책으로 완간을 독려한 이들 독자의 끈기와 인내심 역시 10년 만에 이룬 『이청준 전집』 완간의 큰 주역이라고 적어두어야겠다. (2017.08.09)

 

 

‘선생님을 몇 번쯤 뵈었던가.’ 2017년 6월 마지막 주, 『이청준 전집』 완간을 눈앞에 두고, 언제나 그렇듯 왜 책의 제작 기간은 예외 없이 빠듯하기만 할까 툴툴대며, 완간 기념 도록(『행복한 동행』)의 목차를 짜다 말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상 위는 전집 제작의 막차를 탄 작품집 가제본들과 이미 출간된 책 서른두 권, 그리고 2008년 이후 매해 치러왔던 문학제 자료들로 충분히 어지러웠다. ‘이청준’으로 검색되는 수십 개의 작업 폴더를 드나들며 꺼내놓은 문서창들로 모니터 역시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섭게 쌓여가는 교정지 위로 먼지도 함께 쌓여간 10년 세월 이어진 작업이었건만, 완간을 앞두고 떠올린 생각이 고작 생전의 저자를 몇 번쯤 마주했을까라니. 싱겁기 짝이 없었다.

 

물론 이유야 없지는 않다. 2008년 7월 31일, 이청준 선생님이 작고하시고 나서 본격화된 전집 작업 중에 스스로에게 자주 했던 질문이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구성과 표기 방식, 이런 제목과 디자인을 과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생전의 선생님이 여러 자리와 지면에서, ‘소설은 작가의 몫이나 그 소설을 타고 간 번역은 번역자의 몫이듯, 영화화는 연출자의 몫이고 표지화는 화가의 몫이다’라고 말씀하셨다지만, 글쎄 당신 책의 편집을 편집자 네 뜻대로 하라고 하셨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이청준 문학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가득한 분들로 ‘편집위원회’가 꾸려졌다. 각 권의 수록작들 차례와 작품 170여 편을 아우르는 편집 원칙을 의논하는 사이 새 판본의 본문 파일 마련도 순조로운 듯했다. 2주기에 간신히 맞춰 나온 전집 1, 2권을 들고 선생님의 고향 땅 갯나들 묘역에 내려갔던 2010년 7월의 마지막 날은, 요즘만큼이나 대단한 폭염을 기록한 여름 복판이었다. 손바닥만 한 그늘도 찾기 힘든 뙤약볕 아래 서서 이런 생각도 했던 듯하다. 시작이 반이라지 않은가. 첫 능선을 올랐으니 다음 권 작업은 조금 더 수월하겠지. 전집 편집의 장점이 무언가. 앞서 나온 책들이 모두 든든한 우군이고 조력자 아니겠는가.

 

하지만 기대는 바람처럼, 딱 거기서 멈췄다. 매 작품마다 앞서 나와 있는 판본이, 공들여 만든 일러두기가, 작가 고유의 문체와 사전을 뒤져도 찾기 힘든 표현과 방언 들이 수시로 발목을 붙잡았다. 딱히 답하기 힘든 독자 질문에 그 유용하다는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충실히 따랐습니다’ 카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견을 보이는 대목에서 편집위원들의 생각을 묻고 답을 듣는 데, 작품 해제를 맡은 평론가들 저마다의 해석과 사정을 헤아리는 데만 쏟는 긴장과 끈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200자 원고지 4만 8천여 매에 쓰인 이청준 소설 173편이 중단편집 17권, 장편소설 17권으로 묶여 나왔다.

 

『이청준 전집』 한 권당 짧게는 8개월에서 길게는 4~5년이 걸리는 동안, 그 숱한 편집의 그물을 뚫고 비어져 나온 오자와 크고 작은 실수는 눈 밝은 독자들이 먼저 발견하기도 했다. 열심히 찾아 읽는 독자야 작가만큼이나 편집자에게도 반가운 존재이다. 다만 내일모레 중쇄에 들어갈 형편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제보는 그때마다 편집자인 나를 모두의 죄인으로 있게 했다.

 

무선 제본 34권에 각 권 초판 한정 양장 제본 그리고 세트번호까지 합쳐 이 전집에만 총 70개의 도서번호(ISBN)가 필요했다. 2010년 늦봄, 번호 70개를 한꺼번에 부여 받던 그날, 과연 몇 년이 걸려 이 번호들을 다 인쇄할 수 있을까, 아득한 생각에 두려움과 어지럼증도 뒤따랐던 것 같다. 표지 뒷날개에 채워 넣은 목록 34권은 지난 7월 7일 완간을 하기까지 1차분 2권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순서를 지켜 출간하지 못했다. 꾸준히 따라 읽어온 일반 독자들이나 이청준 문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들 모두에게 더디고 불친절한 행보였으리라. 오랫동안 애정 어린 응원과 날카로운 질책으로 완간을 독려한 이들 독자의 끈기와 인내심 역시 10년 만에 이룬 『이청준 전집』 완간의 큰 주역이라고 적어두어야겠다. 이근혜(문학과지성사 수석편집장

 

 

* 해당 글은 채널예스에 같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채널예스에서 보기-> http://ch.yes24.com/Article/View/34054

이청준 지음 | 김선두 그림
카테고리 이청준 전집,전집 | 출간일 2017년 7월 20일
사양 변형판 138x211 | 가격 427,000원 | ISBN 9788932020808

이청준 소설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후 40여 년간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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