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금정연 – 우리 세기의 ‘공포’를 말하다

백민석 작가의 『공포의 세기』 초판에는 백민석&금정연 인터뷰집 『우리 세기의 ‘공포’를 말하다』 가 함께 증정됩니다. 아직 못보신 분들을 위해 일부를 선택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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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민석이 읽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

금정연_ 어떤 책?

백민석_ 『2666』. 거의 다 읽었다. 그 얘기나 할까?

금정연_ 마침 『공포의 세기』와 주제적으로 맞닿는 지점도 있다. 공포. 그리고 여성혐오.

백민석_ 할 얘기가 굉장히 많은 작품이다. 다섯 권이고 분량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가격이 59,940원인데, 낱권으로는 판매도 하지 않아 약간 억울해하며 샀다) 잘 읽히고. 상을 많이 받거나 유럽 쪽에서 인기가 있으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2666』은 빠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금정연_ 몇 권이 제일 좋았나.

백민석_ 살인 사건이 경찰 보고서처럼 나열되는 4권이랑 아르킴볼디의 일대기가 나오는 5권. 미완성이니까 끝까지 읽어도 결말은 없겠지만 재미있게 읽었고 『공포의 세기』랑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금정연_ 제사로 쓰인 보들레르의 시구부터 그렇다.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 물론 볼라뇨 소설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없지만.

백민석_ 끔찍한 살인마가 나오는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대부분 범인을 아주 악한 존재로, 타자(자기 자신은 결코 아닌, 바로 내가 아닌 누군가)로 설정한다. 『2666』 에서도 누가 사람들을 죽이는지는 모르지만 (범인이) 주인공이나 다른 희생자들과 완전히 별개의 존재지 않나. 절대적인 타자. 『공포의 세기』에서는 범인을 타자가 아닌 우리 안에 누구, 혹은 내가 언제든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본 전제로 하고 썼으니까 거기에서 좀 차이가 있을 거다. 똑같은 살인마가 나오고 살인 장면이 나와도 그게 타자가 아니라 동일자, 나이면서 언제든지 타자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차이가 『공포의 세기』에는 있다. 일부러 그렇게 썼으니까.

 

– 신작 『공포의 세기』

백민석_ 절대적인 타자라고 하는 건 나랑 정확하게 경계가 져 있는 사람,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닌 사람, 우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모비’가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모비랑 다르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거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경우는 나도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지금은 내가 법도 잘 지키고 착하고 누구한테 해코지 할 사람이 아니지만 어떤 계기가 주어지거나 어떤 상황에 처하면 그 악인들과 다를 바 없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전제하고 썼다.

금정연_ 그 부분을 경, 심, 령, 효, 수라는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것 같다. 반면 모비는 절대 악, 안티크라이스트에 가깝고. 작년 『analrealism vol.1』 인터뷰 때 듣기로는 과거에서 시작한 모비의 일대기가 작품 후반부에서 현재 시점으로 진행되는 ‘경, 심, 령, 효, 수’의 이야기와 만날 거라고 했는데 막상 완결된 원고에서는 만나지 않던데.

백민석_ 처음 구상으로는 교도소에서 만나는 설정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더라. 너무 작위적인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떨어뜨려 놓는 게 현대적인 것(소설 작풍)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 쓰기도 힘들고.

금정연_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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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과거의 인물들

금정연_ 한창림이라는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 게 재밌다. 한창림은 『목화밭 엽기전』(2000)에서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왕마초 살인마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는 소시민에 가깝게 나온다.

백민석_ (그때 한창림이 발기부전이었나? 아마 무정자증이었던것 같은데?) 『목화밭 엽기전』이 이천 년도에 나왔는데 아마 그때는 그게 굉장히 드문 소설이었던 모양이다. 책 때문에 여러 사람들한테 온갖 욕을 먹었는데 소설가로 복귀하고 나서 그중 한 사람을 만났다. 자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 그때는 자기가 심했다고, 뭘 몰랐던 것 같다고 사과하더라.

금정연_ 그래서 뭐라고 했나?

백민석_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 못 하겠다고. 아무튼 그때 『목화밭 엽기전』은 대중적인 잡지에 공개적으로 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 눈에 거슬리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작품들이 너무 많지 않나. 그러니 똑같은 걸 쓴다면 (그러니까 내가 과거에 썼던 스타일을 반복한다면) 나는 시대에 뒤처지는 (말하자면 나 자신으로부터 뒤처지는) 것을 쓰는 것 아닌가.

금정연_ 그런 이유라면 굳이 한창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올 필요는 없었을 텐데.

백민석_ 일종의 연속성 같은 거다. 처음 등장했을 때 한창림은 악의 화신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런 악의 화신은 조금 귀엽기까지 한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하) 시간이 많이 지났고 세상이 그만큼 험악해졌고 그보다 더 끔찍한 악이 나왔으니까. 그게 모비다.

금정연_ 모비도 이천 년도에 쓴 『러셔』(2003)의 등장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천 년대 초반에 쓴 두 소설에서 두 인물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러셔』의 모비는 악한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필 그가 악의 화신으로 재등장하는 이유는 무언가?

백민석_ 이름이 너무 아까웠다. 그 이름 만들려고 내가 머리를 정말 많이 썼는데 별로 화제가 안 돼서.

 

-지난 세기와 현재

금정연_ 과거 백민석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의 배후에 ‘믿거나말거나박물지사’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구십 년대식 상상력이라고 본다. 세기말. 음모론. 『혀끝의 남자』에 실린 단편의 상당수도 그 연작의 일부분인데 책을 묶으며 ‘믿거나말거나박물지사’ 부분을 빼고 새롭게 고쳤다고 들었다.

백민석_ 세상이 변한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획일적인 전체주의 사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빅브라더 같은 하나의 커다란 배후, 세계 권력, 정치세력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단 하나의 거대) 기업이라고 해도 좋다. ‘믿거나말거나박물지사’가 바로 그런 기업이었다. (나는 구글이나 삼성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그게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액체근대』 식으로 말하면 고체근대다. 그래서 그런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를테면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이나 「브이 포 벤데타」 같은 블록버스터)도 한때 많이 나오고 소설도 많이 나오지 않았나. (이렇게 말해놓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소설에선 이미 오래전에 전체주의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던 듯싶다.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들이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떠올린다면.) 그런데 막상 이천 년대가 오자 현실은 그것과 반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거다. 고체였던 것들이 액체가 되고 전체주의적이라기보다는 카오스적이고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바우만은 『액체근대』에서 지금, 여기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갖가지 이항 대립들을 보여준다. 고체근대/액체근대, 무거운 근대/가벼운 근대…… 특히 재미있는 건 판옵티콘/시놉티콘의 변화다. 바우만이 보기에 이제 파놉티콘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적절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우만은 이제 더 이상 『1984』 같은 설정의 소설은 안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미드에선 그런 작품들이 나오고, 가깝게는 우리의 봉준호 감독도 「설국열차」를 찍었다. 그저 내용만을 본다면 「설국열차」는 여러모로 『1984』와 닮았다. 권력이 집중되는 단 하나의 점, 열차의 운전칸을 상정해놓고는 헐벗은 인민들이 죽자 사자 달려들게 만들었다.) 바우만은 사람들이 빅브라더를 하나의 농담처럼 취급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절필하고 놀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바우만은 몇 달 전에 읽었는데 꽤 공감하고 있다. 내 식의 이항 대립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여기는 편집증적 세계에서 분열증적 세계, 코스모스적 질서에서 카오스적 질서로 이행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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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도서관 소년, 백민석

 

금정연_ ‘우울한 도서관 소년’으로서의 백민석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창작이라는 것은 작가가 읽어온 책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독자 역시 자신이 읽어온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백민석의 소설을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매칭되는 작품들이 있다. 『내가 사랑한 캔디』(1996)를 생각하면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떠오르고, 『불쌍한 꼬마 한스』를 읽으면 작가 후기에 직접 언급한 것처럼 커트 보네커트가 떠오르고, 『러셔』를 읽으면 윌리엄 깁슨이 떠오르고, 「믿거나말거나박물지」 연작 같은 경우는 도널드 바셀미 같은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떠오른다. 우울한 도서관 소년 백민석이 읽고 좋아하고 영향받은 책들을 그려보게 되는 거다.

백민석_ 『내가 사랑한 캔디』를 쓸 당시에 나한테 큰 영향을 미쳤던 작가들이 리처드 브라우티건, 커트 보네커트 같은 사람들이다. (그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도 받았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아마 나중에 읽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붐이 있었을 때다. 이십대의 젊은 마음에 다른 작가들은 재미가 없었는데 그쪽 작품들은……

금정연_ 웅진에서 나온 <포스트모던 걸작선집> 시리즈.

백민석_ 그 시리즈에 커트 보네커트가 있었고,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도 있었고. 그것들을 읽으며 이 작가가 나한테 맞는다, 나랑 주파수가 맞는다 생각했던 거 같다. 윌리엄 깁슨도 마찬가지고. 그때는 젊었으니까 당연히 읽은 작가도 다양하지 못했다. 독서의 스펙트럼이 좁으니 누구에게 영향을 받는지 금방 드러난다. 그걸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

금정연_ 복귀 후에는 어떤가. 여전히 영향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본인의 작품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백민석_ 지금도 여전히 영향 관계가 있지만 겉으로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을 거다. 나도 이십대 때보다는 훨씬 많은 작품들을 읽지 않았겠나. 훨씬 많은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금정연_ 나 역시 독자로서 백민석에게 영향받은 것은 물론이고, 백민석을 통해 백민석에게 영향을 준 작가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좋은 일, 차라리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 문학계에는 여전히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작가가 어떤 영향 관계도 없이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작품을 써야 한다는 이상한 신화가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전부 다른 스타일로 쓴 초기 작품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인가?

백민석_ (정말 고맙다.) 내 새끼니까, 못난 것도 있지만 다 내 새끼라고 생각하고 사랑해줄 마음은 있다. (웃음) 그래도 항상 나는 내가 전에 썼던 것하고 다르게 쓰려고, 한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한 번 진지한 걸 썼으면 다음 책은 웃기는 거, 끔찍한 걸 한 번 썼으면 다음은 뭔가 말랑말랑한 거, 이렇게 계속해오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똑같은 스타일을 반복하는 작가는 죽은 작가다. 아마 대실 해밋이 한 말 같은데, 그래서 대실 해밋도 그만뒀을 거다. 중간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집에 와서 찾아보니 정확한 얘기는 이렇다. “내가 자기복제를 하는 것 같아서 글쓰기를 관뒀다.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종말의 시작이다.”(『대실 해밋』, 변용란 옮김, 현대문학, 2013, p. 616.) 글쓰기를 그만두고 수입이 없어 말년이 비참했지만 나는 대실 해밋을 이해한다. 차라리 비참한 인생이 글을 쓰는 것보다 나아 보였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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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금정연_ 슬슬 끝낼 시간이다. 움베르트 마투라나라는 칠레 생물학자의 『있음에서 삶으로』라는 책을 읽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봤다. 독일의 어느 저명한 저널리스트라고 하는데, 모든 인터뷰를 같은 질문으로 끝낸다고 한다. 나도 같은 질문을 하겠다. 신은 존재하는가?

백민석_ 있다. 각자의 마음속에.

금정연_ 백민석의 마음속에도?

백민석_ 그렇다.

금정연_ 누구나 가슴속에 신 하나쯤은…… 백민석의 마음속에 있는 신은 어떤 신인가?

백민석_ 내게는 그게 문자인 것 같다. 문자, 글, 로고스.

카테고리 소설,장편소설 | 출간일 2016년 11월 15일
사양 변형판 135x195 · 351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32029054

백민석 소설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문학과사회』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자세히 보기

금정연 일반저자

서평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등이 있다. 후장사실주의자,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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